- 2011' 한라산 극기훈련
- Timberlines 2011-02-01 02:33:08
올 해도 (주)팀버라인은 Timberline을 만나기 위해 제주행 오하마나호의 선실을 예약하였다.
본 훈련에 참가하는 대원들이 등산 도중에 나약한 또는 대견한 자신과 만나게 되는 것처럼, 법인체로서의 (주)팀버라인도 한라산에서 나무가 더 이상 자라지 않는 고도에 형성된 “수목한계선-Timberline”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아마도 한라산의 Timberline은 매년 찾아오는 (주)팀버라인이 해가 지날수록 더 잘 성장한 모습이기를 원하리라......
하지만 몇 년째 같은 겨울산을 추구해온 팀버라인 극기훈련에 대해 이제 영업사원들로부터 불만이 나오기 시작한다.
좋은 날씨에 가도 어려운 등산을
4계절 중 꼭 겨울에 가려하고, 그것도 남한 제 1봉인 한라산만을 고집하니 좋은 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하리라.
이번 극기 훈련을 준비한 이에게 혹시 핑계라도 댈 수 있는 기회를 준다면 아마 다음과 같이 얘기를 했으리라.
첫째는 한라산이 겨울산행 대상지 중 안전이 최대한 확보 된 곳이라는 점이고,
둘째는 사물의 절대적인 가치나 기준은 변하지 않는데, 다만 사람이 변해가고 약해져 간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었다고... ...
나의 개똥철학이 어떻든 간에 모든 일을 바라보는 시각은 사람마다 다른 것이고 또 그 다른 시각들이 잘 녹아들어 형성되어가는 것이 “Timberway"일진데, 앞으로 내 고집만을 부려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새해 벽두부터 한라산을 동계 등정해야하는 일은 영업사원들에게 상당한 부담이고 그래서 참가자들은 스스로 운동을 하게 된다.
아주머니들도 가볍게 오르는 한라산 정상을 팔팔한 청년이 오르지 못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창피인지 잘 알기에.
모두들 인천에서 배를 타고 한라산을 몆 번씩 다녀왔기에, 본 행사가 참가 대원에게 더 이상 새로운 세계로서의 기대감을 주지는 않는다.
그러나 딱 한가지, 한라산이 우리에게 보여주지 않은 것이 있었다.
바로 엄청난 눈태풍과 극한의 추위-바로 경외로운 자연의 힘이었다.
성판악을 오르는 관광버스 창문 밖으로 눈발이 어지러이 날라 다닌다.
이번에는 극기 훈련을 제대로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모든 대원의 표정에 가득하다.
성판악에서 부산 지사 대원들과 합류를 한 후, 눈보라 가득한 한라산으로 걸어 들어간다.
다행히 이번에는 배가 제주항에 제 시간에 도착했기에 차분히 고도를 높여가도 진달래대피소를 12시전에 통과할 수 있었다.
그러나 눈태풍과 극심한 추위가 문제였다.
진달래 대피소를 통과한 후 바람을 조금 막아줄 나무 밑에서 점심을 먹기는 하는 데, 엄청난 눈태풍과 극심한 추위 때문에 편안히 앉아서 먹는 대원이 단 한명도 없다.말 그대로 점심을 빨리 해치워버리고 몸이 점점 굳어가는 상황을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다.모든 대원들이 막걸리 한 병씩을 꿰차고 올랐지만 뚜껑을 딸 엄두를 못 내었고, 나 역시 따뜻하게 데워 보온병에 넣어간 정종을 마셔볼 엄두를 내지 못하였다.등산 행위도 일종의 종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눈태풍에 가려진 정상을 향해 묵묵히 이어지는 사람들의 행렬을 볼 때는... ...모두들 내색은 않지만 이 난공불락의 오르막이 빨리 끝나기를 바라는 마음뿐이다.더욱이 눈태풍으로 등산 계단 밖의 낭떠러지쪽으로 몸이 날려갈때는 모두들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걸음을 멈추고 바람과 싸움을 벌인다.게다가 눈태풍에 얼굴이 노출된 대원들은 동상의 위험까지도 감수해야만 했다.한발 한발 견고히 딛고 오른 오르막이 드디어 끝나고, 정상에 있는 비상대피소 밑에서 바람을 속여보지만 모든 대원들이 바람에 따라 이리 저리 휘청거리고 있다.정상에서의 수은주는 -15도 여기에 사람이 날라갈 정도의 바람까지 불었으니, 체감 온도는 수은주보다도 한참 아래였을 것이다.전원 등정 후 깃발을 꺼내어 기념 촬영을 하려 했지만, 추위와 눈태풍 그리고 하산을 재촉하는 국립공원직원의 성화에 못 이겨 등정자들끼리만 기념 사진을 찍었다.어차피 정상을 오른 사람이나 오르지 못한 사람이나 자기 자신은 만나 보았을 테니 정상에서 더 오래 있을 이유가 없었다.그런데 하산길조차도 눈태풍 때문에 잠시도 긴장을 풀 수가 없다.겨우 진달래대피소에 도착하여, 미지근한 정종을 조금 마시니 정신이 돌아오고 그래서 무겁게 지고 올라온 막걸리 몇 병을 따서 사이좋게 나눠마신다.진달래 대피소부터는 비료푸대를 이용한 신나는 하산길이 되었다.정수원대리가 고향에서 가져온 9개의 비료푸대를 하나씩 지급받아 내리막만 나오면 모두들 활강을 시작한다.활강과 함께 이어지는 괴성들!!힘들고 위험했던 오늘 하루가 제대로 보상받는 시간이었다. 비료푸대를 들고있는 모습이 어찌나 개구쟁이들 같던지... ...
성판악 휴게소에서 배소장님이 가져온 양주로 석별의 정을 나눈 후, 제주 시청행 시내버스에 몸을 실었다.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았는데, 옆에 앉아 계시던 할머니 한 분이 반가이 말을 건네 오신다.제주에서 외동딸로 태어나 부모로부터 한라봉 비닐하우스 10,500평을 물려받은 약간은 신비로운 할머니였다.그 할머니는 마침 성판악 너머에 있는 비닐하우스에 다녀오는 중인지라, 커다란 배낭속에는 한라봉이 가득하였고, 얘기 도중에 수시로 한라봉을 꺼내서 내 손에 쥐어주곤 하였다.제주를 떠나 본 적이 없는 분인지라 제주 사투리가 강하였고 솔직히 하시는 말씀의 반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한라봉 비닐하우스를 10,500평이나 소유한 갑부임에도 불구하고, 수시로 약초를 캐러 한라산을 누비고 게다가 침낭만가지고 산속에서 혼자 자기도 하고 또 뱀에게 물릴 때를 대비해 제독제까지 가지고 산에 들어가신다는 말에는 나름 등산 전문가인 나도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더군다나 시청 정거장에 내려, 무거운 파란색 배낭을 메고 빠른 발걸음으로 멀어져가는 할머니의 뒷모습은 도저히 65세의 할머니라고 느껴지지가 않았다.한라산 눈폭풍에 혼이 나가버린 나는 하산하는 버스속에서 만난 신비한 할머니 때문에 제 정신으로 돌아오는 데 한참이 걸렸다.어쩌면 이제서야 한라산 아니 제주도 깊숙한 곳까지 다녀왔다는 느낌이 드는 산행이었다.
박용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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